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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용철의 서평} 간도, 비극의 땅 잊혀진 영토

kkhh4618 2014. 7. 4. 13:20

 

간도, 비극의 땅 잊혀진 영토

 

심상용 엮음 ∣도서출판 아우누리 ∣2013.08.10.

 

1990년 8월은 한창 무더웠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7명의 공직자들이 중국(그 당시는 중공으로 불렀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가는 행선지는 백두산이었다. 북경을 거쳐 연길로 가는 길을 택했다. 중국의 낡은 비행기는 소음이 심했다. 옆자리 일행과 대화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연길에서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용정을 둘러보았다. 용정의 우물과 대성중학교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와 혼을 지키고 살아가는 중국 동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한국을 동경하였으나 근래에는 실망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중국에 온 한국인들이 동포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보고 순간적인 동정심 때문에, 그들의 주소를 받아 적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생필품을 보내주겠다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버렸다. 그 말을 믿은 동포들은 생필품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이 없자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기 전이라 중국을 오갈 수 있는 한국인은 주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었다.

 

백두산(중국명, 장백산) 입구에 도착하여 지프차에 분승하여 백두산으로 향했다. 울창한 숲과 오랜 역사적 이야기를 간직한 길을 따라 천지연 아래까지 올라갔다. 마지막 길은 걸어서 가야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산꼭대기의 바람은 초겨울 날씨를 느끼게 하였다. 나는 안내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태극기가 그려진 명찰을 가슴에 달았다. 천지연은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구름이 걷히며 발아래 펼쳐진 거대한 풍경에 모두 말을 잊었다. 우리 일행은 모여서 애국가를 불렀다. 목이 메어 소리는 고르지 못했다. 저 건너편 봉우리는 북한 초소가 있었다. 북한 군인들이 망원경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었다. 백두산 천지를 보면서 가슴을 아리는 것은 고구려와 발해의 옛 영토가 우리나라 땅이 되지 못한 설움이었다. 아, 우리의 잃어버린 국토, 간도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났다.

 

 

{출처: 간도되찾기운동분부. http://www.gando.or.kr)

간도는 어디를 두고 말하는가? 간도(間島)는 백두산 북쪽의 만주 지역 일대로, 서간도(압록강,송화강의 상류지방인 백두산 일대)와 동간도(북간도-훈춘,왕청,연길,활룡현 등 포함 지역)로 구분된다. 주로 간도라 하면 우리가 흔히 '연변'이라고 부르는 중국 길림성 동쪽의 연변조선족자치주에 해당하는 지역인 북간도(동간도)를 가리킨다. 지형적으로 볼 때 간도는 남서쪽의 백두산을 주봉으로 장백산맥이 자리하고 남쪽으로는 두만강이 흐르고 있다.

 

간도에는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가? 이것을 정확히 알아야 우리 땅임을 주장할 수 있다. 간도는 원래 읍루와 옥저의 땅이었다가 고구려가 이 지방으로 뻗어나면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고구려가 망한 뒤에는 발해의 영토가 되었다. 그 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여진족이 각지에 흩어져 살았다. 그러나 여진족은 농경보다 유목·수렵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이 비옥한 지역이 오랫동안 개척되지 못하였고, 조선 후기 한국인 유민(流民)이 들어가 미개지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조선인들이 개척한 간도 지역에 국가 간의 영유권 분쟁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주지역에 청나라가 세워진 후에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와 청나라 간 국경선 문제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숙종 38년(1712)에는 우리나라와 청나라를 가르는 '백두산 정계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이 정계비에는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으로 하여 이 분수령에 비를 세운다(서위압록 동위토문 고어분수영상 늑석위기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여기서 `토문강'이 어디를 지칭하는 지를 두고 훗날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정계비는 이후 소실돼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청나라는 간도지역을 오랫동안 봉금지역(封禁地域)으로 선포하고 입주를 엄금하였다. 정계비가 건립된 뒤에도 간도 귀속 문제가 논의된 바 없이 지내 왔으나, 19세기 중엽에 들어 청나라의 봉금과 조선의 월경 금지가 소홀해지고 함경도민들의 두만강 월경 농사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야기되었다. 특히, 1869년과 1870년 함경도에 큰 흉년이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간도로 옮겨갔다. 이에 청나라는 1881년부터 봉금을 해제하고 청국인의 간도 이주와 개간, 농경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으며, 1883년에는 간도에서의 조선인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외교분쟁이 첨예화 되었는데, 조선은 백두산 정계비에 의거하여 '토문강'이 송화강 상류에 있는 지류인 토문강(해란강)을 가리키므로 간도는 조선 영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두만강이 '토문강'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1885년~1888년 청나라와 조선 간 교섭이 진행되었으나 결렬되었다. 조선 측 대표로 안변부사 이중하는 청나라와의 담판에서 ‘백두산정계비’에 적혀있는 곳에서 “차라리 목을 내놓을지라도 한 치의 땅도 내어줄 수 없다”고 간도가 우리 영토임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일제가 국권을 빼앗아 간 뒤인 1909년 9월 일제는 청나라로부터 남만주철도 부설권(선양-다롄)을 보장받은 대가로 백두산 정계비에 대한 청나라측 해석을 그대로 인정, '간도협약'을 체결했다. 간도협약은 제 1조에 "청·일 양국정부는 두만강을 한·청 경계로 상호 성명하고 정계비로부터 석을수를 경계선으로 한다" 고 규정했다. 이때부터 50년대 말까지 한-중 국경선은 두만강 상류인 석을수로 확정되고 말았다. 정계비에 기록된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의 상류이며 따라서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우리측 주장은 철저히 무시됐다. 한편 일제시대에는 일제에 항거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간도는 청산리대첩과 봉오동전투 등 항일무장투쟁의 거점이 되었다.

 

오늘날 간도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설치되어 있다.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조선족이 전체의 41%인 백만여 명에 달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한족·만주족·회족 순으로 분포하고 있다. 주요 도시로는 행정수도인 연길을 비롯해 북한과 접경한 도문, 러시아와 국경을 두고 있는 훈춘·안도·둔화·화룡·용정 등 6개 시와 왕청·안도 등 2개 현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재구성함)

 

 

「간도 비극의 땅 잊혀진 영토」의 저자 심상용 선생은 간도 용정에서 태어나 형제들과 농사일을 거들다가 고국에서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21세 때 간도일보사 기자로 일하다 독립운동과 연관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상해임시정부 연락책을 맡아 군자금 전달을 하다 발각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 김구 선생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이 책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간도가 우리 민족이 개간하고 거주하였지만 일본의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을 겪고 있는 사이 중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인구의 분포도 지금은 중국인이 더 많이 거주하고 있다. 남북통일 이후의 영토문제가 대두될 것을 의식하여 주국이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간도의 실상을 재조명하고 국민적인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첫째, 중국정부에 동북공정을 중단하고 간도문제에 대한 정치적, 학술적 논의를 추진해야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청일간도협약 무효를 천명해야 한다. 둘째, 대국민 홍보를 통해 간도가 잊혀진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셋째,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간도가 우리 땅임을 국제사회에 알려 협력을 받아야 한다. 넷째, 일본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일본과 중국 간의 간도협약은 무효다.

 

조선말의 어수선한 상황과 나라를 빼앗긴 국민은 어떠한 고초를 당하는지를 역사를 통해 분명히 배웠다. 그로 인해 우리 땅 간도 지역도 결국 중국의 땅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역사적인 죄를 짓는 것이다. 국가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나라의 운명을 교훈으로 얻었다. 지금은 잊혀진 우리의 땅, 조상의 숨결과 혼이 살아 있는 우리 땅, 간도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말 안변부사 이중하와 같은 분들이 주위에 많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스스로 자문해보고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국인 되는 길을 결연히 가야겠다.

출처 : 가슴에는 조국을 눈은 세계로
글쓴이 : 이로제履露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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